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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직장인 에세이]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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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처음 내려간 고향이었다. 

그간 결혼 준비다 출산이다해서 못내려온지도 꽤 된 것 같았다. 

 

사실 총각일때도 부모님 생신, 명절 이렇게 해서 총 4번 정도 내려왔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지 않은 주기로 내려왔다" 생각했던 거 보면

최근에 정말 많이 고향 방문에 소홀했던 것 같다. 

 

오래만에 내려간 그곳은 여전했다. 아니, 많이 변해있었다. 

그대로인것은 늘 그대로이지만 변하는 건 180도 뒤집듯 형체를 바꿔 변해있는 곳이

시골인것 같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로 우리 집을 짓자고 산 땅은 원래 벼를 키우는 논이었지만

이제 땅을 돋아서 평지가 되었다. 

 

누가 보면 원래부터 논이 아닌 그냥 땅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다만 돋아놓은 땅 옆에 정말 어울리지 않게 아직도 논이 있어서

'혹시나 여기도 논이 있었을까' 라고 추리력이 좋은 사람은 추측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녁시간이 되었다. 

시골밥상은 언제나 풍성하다.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말은 우리집 밥상에 잘 어울리는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마의 손맛에 더해진 조미료가 아주 조금 들어간 반찬들...

여담으로 현대사회에서 인공 조미료를 '죄악' 시 하지만 조미료는 음식의 풍미를 

확실히 올려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과한 조미료는 음식의 본연의 맛을 해친다는 것은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저녁시간 아버지의 말은 조미료가 너무 들어간 음식 같았고, 논의 흔적을 없앤 돋아난 흙덩이 같았다. 

"큰아버지 아들이 간암으로 죽은게 다 마누라가 아침밥을 안차려 줘서야"

 

갑자기 너무 뜬금없는 말씀에 식사하다가 나도 어안이 벙벙해 졌다. 

나한테는 어렸을적 세상의 지식과 경험을 모두 집대성한 사람이 아버지 같았다. 

그래서 난 아버지를 참 존경했다. 

 

그런 분이 너무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헛웃음까지 나와버렸다. 

 

"준호가 주말에 너네 큰아버지댁에 갈때마다 와이프가 아침 안챙겨줘서 아침먹으로 왔지라고 말했하고 하더라,

친구들한테도 자주 그랬대, 준호가 술은 좋아했지만 아침 못먹고 다닌게 그 큰병 걸리게 한 거지"

 

이제는 나도 인내심을 잃었다. 목소리 톤을 높여 아버지를 쏘아 붙였다. 

 

" 무슨 말도 안되는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아침밥이랑 간암이랑 무슨 상관있어요, 술을 많이 드신 형 잘못이지 그게 왜 

와이프 잘못입니까"

 

내가 얼굴이 빨개져 열변을 토하니 아버지도 좀 당황해 하셨다.

 

" 아니.. 사람들이 다 그랬다니깐..."

 

그 한마디가

커보이고 강했던 존경했던 아버지를  그저 시골에 꼰대처럼 늙으신 할아버지처럼 만들어 버렸다. 

 

내 고함 같은 열변에 식사자리에 잠시 고요가 찾아왔지만 

곧 이내 매제와 동생들의 화제 전환으로 다시금 밝은 분위기를 찾았다. 

 

서울로 올라와 와이프와 함께 침대에 누워 어젯밤 저녁식사 자리를 곰곰히 생각해 봤다. 

도대체 준호형은 왜 그런말을 하고 다녔을까?를 생각해보니,

 

부모님집에 가면서 적당한 구실이 없었던 준호형은 그저 와이프가 밥을 안준다는 핑계삼아

부모님집에 찾아뵀던건 아닐까?

 

이런 멋진고 아름다운 이유일지라도, 혹은 아닐지라도  준호형 같은 말은 절대

입 밖으로 내뱉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그게 좋은 의도일지라도 준호형이 세상을 떠난 후, 와이프가 아침밥을 안차려 준 사람이 되었고

준호형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세상 나쁜 사람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해서 하는 말은 정말이지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조미료를 듬뿍 넣은 음식처럼,

그리고 논을 덮어버린 흙덩이 처럼 영원히 진실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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