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직장인 에세이] 그때의 우리

반응형

이쯤이면 그칠만 생각했는데 여전히 비가 내려

고단한 하루의 끝은 이렇게 축축하고 고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내리는 지금의 비는 그때의 비와 또 사뭇 느낌이 달라. 그땐 참 비가 좋았는데.

난 비가 올 것 같은 습한 냄새가 코끝에 닿을 때면 "비 오겠다" 라고 중얼거리곤 했지. 비는 나에게 설레임이었어. 비가오는 하루는 너와 같이 걸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충만한 그런 하루

비가 매일 왔으면 하고 생각했어. 너와 함께 걷고 싶어서, 그런데 막상 너와 함께 걷게 되면 내 머릿속에도 비가 내렸나봐.머릿 속에 있던 하고싶던 말이 씻겨져 내려가는 것 같았어. 매일 장화를 사주지 않는 엄마 이야기만 매일 늘어놓았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매일 처음듣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대하는 너는 나에게 싱그러운 봄비 같았어

좁은 우산에서 너와 눈이 마주칠때면 나는 떨어지는 빗방울을 디딤돌 삼아 저 구름 너머로 날아갈것 같이 행복했거든. 그냥 그런거 있잖아 좋아하는 사람과 있다는것 자체만으로도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나고, 기쁘다가 슬프기도하고

그해 비가오는 날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우산이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없었어
그게뭐라고. 그냥 "같이 갈래" 한마디 말이면 되는 건데. 다른 친구들한테는 낯가림도 없는 내가 너한테만은 비가오면 구름 뒤에 숨어버린 해처럼 내 마음을 숨기게 되더라

그땐 그랬어. 네가 좋았고, 그래서 비가 좋았어. 비를 기다리던 그때는 많이 지났고 비온 뒤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지는 하늘처럼 많은게 변했어. 그렇게 나도 좋은 사람을 만났고 친구들을 모아 청첩장을 돌리던 날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너의 표정은 우산 속에 멍하니 무언가를 생각하던 너의 모습 그대로더라.

1년 내내 비가 내렸다면 우린 함께 걷던 그 길가에서 손을 잡을 수 있었을까? 떨어지는 빗방울을 딛고 날아갈것 같아던 그 순간에도 결국에는 내리는 비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난 다시 땅으로 내려 올 수 밖에 없었겠지? 지금 너를 다시 본 이 순간이 증명해주는 것 같아

이제는 더 이상 비오는 날을 기다리지 않을래. 어렸을 적 비가 오면 설렜던 그날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그 기억만으로도 행복했어.

"잘가. 안녕" 멀어지는 네 모습을 보며 난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어.

끝.

반응형